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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후서6장1절-10절)
남수연 2025-07-29 추천 0 댓글 0 조회 24

고린도교회는 바울사도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신전과 신상들과 향냄새로 가득찬 도시가 고린도입니다.

거기서 하나님만을 신으로 믿는 게 쉬웠겠습니까?

1세기의 성도들은 지금처럼 신구약성경이 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들은 전도를 다녔기에 한 교회에 머물 수도 없었습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떠나지만 않았어도 편지에 드러난 그런 문제들도 없었을지 모르죠.

바울사도에게 고린도교회는 섭섭함보다는 아픈 손가락 같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성도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그러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연약함을 극복해야 했기에 바울사도를 통해 한자 한자 꾹꾹 눌러서 이 편지를 써 보내신 것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이 없다는 세상 속에서 작은 믿음으로 버티다 나온 우리를 주님께서 그렇게 측은히 여기실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바울사도의 권면이 힘이 되게 하시리라 기대합니다.

 

1절이 오늘 본문에서 주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1)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포괄적인 데, 여기서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앞뒤 맥락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못 믿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가장 큰 은혜죠.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마가복음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놓고 거짓을 유포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는 예수님 말씀대로 믿고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누가 우리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남들처럼 인생이 파탄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죠.

믿고 나서도 은혜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지난 주에 있었던 일들도 또 어떻게 이겨냈겠습니까?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세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실 때는 기대하시는 게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기대하시는 게 부담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내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나와 상관없거나 기대할 만한 게 내게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헛되이란 단어는 텅 빈, 공허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결과가 없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포도나무를 심은 농장 주인이 해마다 열매를 기다리는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식물은 주인의 근심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이 자라고 풍성히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서 열매를 찾아보니 nothing 이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없어야 할 육체의 열매들이 가득한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에 맞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뒤에서 바울사도의 경우를 예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은 구원받은 복음을 잘 보존하고 후대에 전파하고 전수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다른 조건을 섞은 다른 복음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에 있는 문제죠.

바울은 일년 반 동안 심혈을 다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린도성도들은 바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전한 바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고린도 성도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구약의 할례와 전통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유대교가 섞인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대속 외에 다른 구원의 조건을 얹으면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는 것도 다른 복음입니다.

구원받았기에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에 관심이 많은 성도들은 새로운 신앙운동이나 프로그램에 잘 참여합니다.

고린도교인들도 그런 의도로 교회를 방문한 순회전도자들의 말에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흘러 들어오는 많은 훈련이나 프로그램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좋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문제성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복음을 완전 마스터 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바른 신앙에 침투하는 다른 복음에 넘어갑니다.

천 년 동안 천주교의 혼합신앙에서 하나님은 기적적인 종교개혁을 행하셨어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속과 나의 구주되심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 믿음의 기준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해 준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은혜에 헛된 것을 섞지 않는 것이 우리가 구원 받은 은혜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3) 구원의 은혜를 받는 일에 긴급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받을 만한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구절에서 앞부분은 이사야서49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장차 메시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실 거라고 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엔 구원의 대상이 혈통적 이스라엘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지금이 바로 이방인 모두가 구원받을 그때라는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 순간이 은혜받을 때이고 구원받을 때입니다.

그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언제 기회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죠.

교회사에서 큰 부흥과 구원의 역사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국가들을 보면 썰물이 빠져 나간 해변에서 고기 잡는 만큼이나 회심자 얻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고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닙니다.

지금 은혜가 임하실 때, 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길 축복드립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전도하고 누군가를 섬길 수 있는 것도 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한마디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다시는 못 만나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것이나 믿는 것에 긴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무뎌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입니다.

 

2. 고린도교회가 은혜를 헛되이 받았다면 바울사도와 동역자들은 은혜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이 열매가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1)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합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신앙에 관련된 것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풀타임 사역자로 일했지만 보통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세상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일해서 돈을 벌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천금 같은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바게트빵을 제일 잘 굽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프랑스 제빵 경연에서 세 가지 분야에 최우수상을 탄 서용0제빵사입니다.

이분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던 중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변경합니다.

목회가 적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제과제빵사가 되기로 한 것이죠.

프랑스로 건너가 20여년 동안 신앙처럼 우직하게 빵을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빵집의 80%가 냉동 반죽을 받아서 빵을 굽는다고 합니다.

서제빵사는 새벽 12시 반에 출근해서 밀가루를 손수 반죽해서 수제로 모든 빵을 만듭니다.

그렇게 고생한 빵을 주변 빵집의 냉동빵과 똑같은 가격에 팔았습니다.

가격을 올리자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어느날 아내는 슬그머니 인상 된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남편도 묵인하는지 아무 말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빵의 크기가 두 배로 커져 있었습니다.

목회로 주님을 따르는 길은 변경되었지만, 어떻게 주님을 따르며 살지는 변경되지 않은 것이죠.

서제빵사의 노력과 성실함을 세상만 인정한 게 아니라 하나님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주께 하듯하라고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에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게 나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해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는 타인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우리의 허물로 구원의 복음 자체가 거부당하지 않게 산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복음보다 복음 전하는 사람을 먼저 대면하기 때문입니다.

한 여성 원로 탤런트가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미국에서 식당할 때 렌트계약 문제로 5년 만에 가게를 접었다고 합니다.

주인의 계약조건은 렌트비 잘 내면 계속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에게 사준 그랜드피아노까지 팔아가며 약속을 지켰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결국 재계약을 안 해 줘서 장사를 못하게 되었던 것이죠.

임대인 한국인 부부가 권사, 장로였다고 합니다.

원로 탤런트의 말에 자기는 오히려 쿨하게 식당 열쇠를 넘겨주며 부자되세요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그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그때 가게 문만 닫고 나온 게 아닙니다.

등 뒤로 교회 문을 닫고 나온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교포들이 교회 나가기가 쉽잖아요?

그 가게 주인이 이 분의 유튜브 보면 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아랍국가들 중에서 이슬람을 이탈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슬람이 1400년 동안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문맹정책이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인터넷, SNS, 유튜브, 기독교방송까지 누구나 접속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이슬람에 대한 맹신에 균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갤럽이 조사한 통계로는 2020년 모로코 인구의 15%가 이슬람을 떠났다고 합니다.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이 문제를 집중 연구를 했습니다.

이슬람을 떠난 첫 번째 이유가 기독교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삶에 감동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들을 사람들에게 비방이나 거리낌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쓴 이유입니다.

우리가 같은 이유로 나를 조금이라도 삼가고 희생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어려움에 대한 인내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바울사도는 환난, 궁핍, 고난, 매 맞음, 갇힘, 난동,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매를 맞는다니 우리가 상상인들 한 적 있을까요?

바울사도는 39대의 태장을 다섯 번 맞았다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유독 바울사도에게는 반 평생을 고난 속에 살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울의 선택이었습니다.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진짜 발견했다면 모든 것을 팔아서 그리로 갈 수 있는 배를 사는 건 당연한 것이죠.

바울이 복음을 깊이 깨달았고, 삼층천을 다녀왔다고 밝힙니다.

그래놓고 바울이 이땅의 것을 아까워하고 몸을 사린다면 바울이 증언하는 구원과 천국의 값어치를 누가 믿겠습니까?

우리도 지금 희생하는 만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이시고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스스로 당하신 십자가의 극형은 구원의 값어치가 그만큼 크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값어치를 알면 우리도 복음을 위해 고난을 자원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며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는 성품으로도 열매를 맺습니다.

6, 깨끗함, 지식, 오래참음,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이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의의 무기.

이것은 인간 바울에게서 나온 것들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참을성이 많고 자비한 성품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91절을 보면 성도들을 체포하러 가는 바울에 대해 기록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인간 바울에게서 어떻게 거짓 없는 사랑이 나오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맺는 결실들인 것이죠.

이걸 보면 성령의 열매들인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러나 내게 부족한 열매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5) 은혜 안에서 일할 때 사람들의 대우나 평가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바울을 어떻게 대했다고 합니까?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바울의 복음전파는 믿고 구원 얻은 사람들에게는 영광이었고, 거부하는 자들로부터는 욕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구는 바울을 악한 자라 했고, 누군가는 바울의 헌신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때로 오해를 받습니다.

칭찬이든 욕이든 바울사도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나 봉사할 때도 그렇습니다.

일이 잘되고, 결과가 좋고, 인정을 받으면 당연히 좋죠.

그러나 그 결과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대한 만큼 안되고, 칭찬 대신 무관심과 비판이 돌아오면 크게 시험에 들게 됩니다.

나의 모든 삶의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의 일로 자꾸 돌리는 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은혜받은 결실이 바울사도에게서 다섯가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을 자처함, 타인 구원 중심, 믿음의 삶 속에서의 인내, 성품의 열매, 남의 평가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 이 네 가지가 점점 풍성히 열매 맺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그러나 바울사도는 자신들의 겉모습을 보고 오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놀라지 말라, 하나님의 성도들의 실체와 영광을 9,10절에서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건 보고 하는 말이지 그냥 상상으로 그렇게 위로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사도에게는 두 가지 담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과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면 아무 공로도 없는 우리는 눈치나 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이미 바울사도에게는 엄청난 자긍심이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나는 그만큼 존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입니까?

누가 나를 천히 본다고 내가 천해지는 게 아닙니다.

다른 누구에게 내 존재를 검증하고 확인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바울사돈느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천국을 다녀왔잖아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평생 당하는 모든 시련조차도 천국에서의 하루 영광과 비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바울사도는 보았기에 더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도 나처럼 살아도 좋다는 것이죠.

우리가 시험의 때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소망입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지극히 높은 영광과 행복이 사실인 것을 항상 생각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전에 다큐 프로에서 일부 자폐아들에게서 나타나는 천재성에 대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뇌에 손상을 입어 자폐증을 갖게 된 사람들 중에 어떤 방면에 뛰어난 천재성이 나타납니다.

서번트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실험에 참여한 자폐아동 둘은 암기력과 계산력이 컴퓨터 수준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복잡하게 얽힌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10분 동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역의 순서와 역사 번호를 물었더니 단 한 개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대답하더군요.

또 연도와 월일을 말하면 그날이 무슨 요일인지가 바로 나옵니다.

210011일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으니 1초도 안 걸려서 금요일이라고 말합니다.

PD가 어떻게 이렇게 알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계산한다는 거예요.

머리 속에서 컴퓨터가 계산하듯이 순식간에 계산이 된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제가 쳇지피티에게도 210011일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거의 자폐아동과 같은 속도로 금요일이라고 답을 주더군요.

또 다른 실험 대상은 미국인 서번트증후군 화가였어요.

이 화가를 일본 도쿄에 데려와 높은 빌딩 옥상에 세웁니다.

그리고 시내 전체를 40분정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360도로 둥글게 제작한 그림판을 줍니다.

화가가 본 도쿄 풍경을 그리게 한 것이죠.

일주일 동안 밖에도 안 나가고 호텔방에서만 그림을 그립니다.

완성된 그림을 사진 자료하고 겹쳐 보았더니 정확하게 일치됩니다.

큰 건물은 층수와 창문 숫자, 도로의 차선까지 똑같았습니다.

40분 보았던 도쿄 시내를 마치 뇌로 사진을 찍어 놓고 그것을 보면서 그리는 것 같더군요.

배운 적도 없는 데 어떤 곡이든 들려 주는대로 피아노를 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뇌가 최대치로 저 정도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드셨다는 거잖아요?

범죄 이전의 아담이 그 정도는 능력이 뛰어났기에 하나님의 자리도 넘볼 마음이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서 지금의 약함을 벗고 본래의 능력으로 부활한다면 우리가 다 천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뇌와 육체의 모든 능력이 다 최대치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영원한 미래의 삶이 너무 익싸이팅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누릴 이 모든 것은 계약만 된 게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소유권이 넘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약서만 주시고 너희가 하는 걸 봐서 넘겨 주시겠다고 하신 게 아닙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꾸 현실로 상상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그것을 너무나 확실히 알았잖아요?

그렇기에 지금 가진 어떤 것이든 아낌없이 쏟아 붓고 영원한 것을 잡으러 달려갔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은혜를 헛되지 받지 않으려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잘 배우고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로 거듭난 우리 속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지만 옛사람은 나를 위합니다.

우리 옛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심드렁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길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로 주님도 섬기고,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입니다.

그 열매들이 더 풍성해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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