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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을 위한 화목제 (레위기3장, 7장15절-18절)
남수연 2025-04-29 추천 0 댓글 0 조회 17

구약성도들 신앙의 중심은 제사제도였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을 배우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구약의 성도들에게 왜 이런 제사를 요구하셨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창조주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스스로 나갈 수도 없게 된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 그런 상태였잖아요?

그러던 중 하나님이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다른 모든 민족처럼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는 제도를 주신 것이 제사법입니다.

가축의 제사로 사람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법을 정하신 것이죠.

구약성경이 예수님 이야기듯 제사법도 당연히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속죄제를 통해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계속 죄를 지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단번에 모든 죄를 대속하신 제사를 완성하신 것이죠.

그 대속의 제사는 이스라엘 뿐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레위기 제사가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제사법 안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하는지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은혜가 넘치는 화목제 제사를 함께 배워보겠습니다.

 

1. 화목제 제사가 무엇인지 전체적인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가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번제와 소제를 배웠죠.

번제는 제물을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법입니다.

히브리어로 올라라고 했죠.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일상의 감사제사라고 배웠습니다.

히브리어로 민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세 번째 제사는 화목제입니다.

제사 명칭에서 무엇을 위한 제사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입니다.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쉘라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샬롬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평강, 화목의 제사라는 뜻입니다.

715, 16절에 보면 화목제를 드리는 세 가지 경우가 나옵니다.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입니다.

1) 어떤 소원이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감사함으로 드리는 게 감사제입니다.

전쟁에서 돌아왔거나, 병이 나았을 때도 드렸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저도 오늘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딸이 박사과정 마지막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 트럼프가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대학에 교부금을 다 끊어 버렸습니다.

서원이가 월급을 받는 행정조교직도 예산이 없어 내년엔 계약이 힘들 것 같다고 합니다.

내년이면 학생 비자도 만료됩니다.

그래서 지금 사위하고 같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서 종교비자와 영주권을 급하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비용을 포함해 일차 들어가는 돈이 8백만 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갑자기 돈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그런데 그저께 학교에서 서원이 논문이 박사생 최우수논문으로 뽑혔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상금 천만 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 밖에는 어디서 해결할 방법이 없었는데,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죠.

이럴 때 하나님 앞에 감사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저도 소 한 마리 잡아야 할까요?

2) 다음 서원제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과 관련된 제사입니다.

서원은 조건을 건 기도이기도 하고, 조건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드리는 제사가 서원제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꼭 갚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전도서에 보면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게 낫다고 하죠.

그러나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서원하고 성실하게 갚는 것을 성경은 권장합니다.

시편7611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성경의 서원은 기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간절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도 젊을 때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작은 것이라도 작정하면서 조금씩 더 신실해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사실 작정하지 않으면 믿음이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갑니다.

우리 수요기도회에 옆 사무실에서 화장품 판매업을 하는 여집사님이 참여하십니다.

지난 주 얼굴에 근심이 많아서 물었더니 코로나 때 보다 더 매출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작정하고 사업을 위해 기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상황만 보고 걱정만 하면 어떻게 돌파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인도해 주시길 바라며 기도시간을 작정하는 것도 서원기도입니다.

문제에 부딪쳤다면 그 정도 간절함은 있어야죠.

자식이 없던 한나가 자식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간절한 서원기도를 하고 낳은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한나가 젖 뗀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데려다 줄 때 서원제 제물도 함께 드린 것이 사무엘상2장에 나옵니다.

어린 사무엘을 성소에 맡기고 오는 한나의 마음이 얼마나 애틋했을까요?

그러나 서원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아예 바칠 사무엘도 없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응답받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길 축복드립니다.

우리 신앙을 작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바칠 것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자원제는 특별한 이유가 없이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 생활 중에 어느 때는 더 하나님께 감사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더 헌신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생각해 보십시오.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소박하게 먹고 살며 예수님을 믿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도 하나님 앞에 걸어 나왔잖아요?

이렇게 감사와 서원과 자원할 때 예물을 가지고 내 앞으로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 기도와 소원과 삶을 내가 인도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지도 않은 일에, 와서 감사하라고 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항상 감사와 서원과 자원하는 마음과 준비한 예물로 예배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화목제의 제사 방법은 번제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번제처럼 제물을 다 불살라 태워 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해주신 일부만 화제로 태워 드립니다.

남은 부분은 제사장과 예배자들의 몫으로 돌려 함께 나누는 제사입니다.

1) 먼저 제물을 준비합니다.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 중에서 가져옵니다.

번제에서는 가능했던 비둘기는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화목제가 공동 식사가 곁들여진 제사라는 걸 생각하면 비둘기는 적당치가 않죠.

번제에서는 숫컷만 번제물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화목제는 암컷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속죄를 목적으로 한 번제보다, 자발적인 화목제는 예배자들의 선택의 범위를 좀 넓혀 주신 것이죠.

단 화목제 경우에도 흠없는 제물이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먹을 고기라 생각하면 좀 흠이 있는 제물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죠.

그러나 화목제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이 다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흠없는 제물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 제사의 제물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제물은 항상 흠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제엔 제물에 대해 하나님이 예외를 두셨습니다.

자원제의 경우 제물의 다리에 이상이 있는 것도 허용하십니다.

자원하는 예물이기에 예배자의 형편에 따라 좀 싼 제물도 받으시겠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 예배하고 헌금하는지 그런 것을 다 알고 이해하십니다.

 

2) 제물을 잡는 방법은 번제와 같습니다.

2,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번제 때와 같이 제물의 머리에 먼저 안수합니다.

안수는 제물에 내 죄를 전가 시키는 것과 제물과 내가 연합되었다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내가 죄인인 걸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먼저 그 번제물로 내 죄를 속죄받아야 하는 것이죠.

아무나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죠.

제사장은 잡은 제물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아무리 예배자가 제물에 안수했다 해도 제물이 죽어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죄가 됩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922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 죄가 여전히 있는 것이죠.

 

3) 제물 중에서 하나님께 화제로 태워 드려야 할 부분을 알려주십니다.

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말이 길지만 정리하면 화제로 태울 것은 기름과 콩팥과 간에 덮힌 꺼풀입니다.

왜 기름과 콩팥과 간에 덮인 꺼풀만 꼭 짚어서 화제로 드리라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당시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았을 것 같습니다.

고대에는 동물 기름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벨이 드린 제사가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아벨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드렸겠죠.

신명기34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책망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최고의 것으로 기르셨는데, 너희가 발로 찼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좋은 것을 말하는데, 양의 고기라 하지 않고 양의 기름이라고 하죠.

지금도 기름지다 그러면 좋은 것을 의미하잖아요?

소고기도 기름이 사이사이 끼어 있는 마블링 좋은 게 맛있고, 비싸죠.

에스겔서에 보면 자기 배만 채우는 제사장들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에스겔34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구약시대엔 육류의 기름을 귀하게 여겼다는 걸 알 수 있죠.

사실 콩으로 만든 식용유가 대거 보급되면서 동물성 기름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영양학적으로 볼 때는 소기름의 장점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때 정육점에 고기 사러 가면 꼭 하는 말이 있었죠.

기름 좀 많이 주세요.

고기를 조금 넣고 국을 끓여도 기름이 넉넉하게 들어가면 한 가족 밥상이 풍성했습니다.

우리는 고기보다 기름이 더 많은 고깃국 먹고 컸습니다.

기름을 바치라는 것은, 너희 건강에 해로우니 내게 바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것은 당연히 최고의 부분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 내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콩팥과 간의 껍질을 떼어서 화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왜 그런지는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본질인 영, 자아,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모든 유전정보와 기억과 경험이 담겨 있는 뇌일까요?

뇌가 나라면 왠지 좀 이상하죠.

뇌사상태라고 우리 영혼도 죽는 건 아니잖아요?

고대 사람들은 마음이 콩팥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가슴을 가리키며 내 마음이라 하지 머리를 가리키진 않죠.

기막히게 슬픈 일을 당하면 애가 끊어지는 것 같다고 하죠.

애가 바로 간입니다.

의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여전히 사람 존재의 본질인 영혼과 마음이 장기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콩팥과 간의 꺼풀을 떼어서 바치라는 것은 육신보다 마음을 바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물과 예배자는 동일시되기에 곧 예배자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간을 다 떼지 않고 껍질만 벗겨 태우라고 하시죠.

간의 무게가 꽤 나가고 사람들이 즐겨 먹던 부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부위 별로 싹 다 먹잖아요?

하나님 앞에 나온 이날은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즐거워하라시는 것이죠.

화목제물은 우리에게 화평과 화목을 가져다 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주님도 우리와 같은 완전한 사람이셨으니 우리처럼 삶을 누릴 자격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귀중한 것 전부를 드리신 것이죠.

또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무가치하고 낮은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마음 전부를 드리시길 축복드립니다.

사무엘상2장에서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던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남들이 나를 경멸해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면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경멸하시면 아무리 스스로를 높여도 실상은 가장 비참한 사람인 것입니다.

 

4) 이 세 가지를 제단 위에 있는 번제물 위에서 태우면 됩니다.

여기서 무심코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만 제단에서 태우는 게 아닙니다.

이미 번제단 위에는 번제물이 타고 있다는 것이죠.

큰 절기에는 보통 속죄의 번제를 먼저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화목제만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제단에는 아침저녁 상번제로 드린 번제물이 타고 있었습니다.

실제 번제를 드려 본 신학교 교수의 말에 따르자면 동물 번제가 그렇게 쉽게 다 태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걸 떠올리죠.

고기가 금방 타듯이 제물이 빨리 타서 없어질 것 같지만 아니라고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잘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처음엔 고기에 섞인 기름 때문에 잘 탑니다.

나중에 살만 남으면 재가 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드린 제물이 저녁 제물을 드릴 때까지 계속 번제단에서 타고 있는 것이죠.

저녁에 드린 제물은 밤새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번제단의 불이 절대로 꺼지지 않게 관리해야 했습니다.

감사로 드리는 제사라 해도 번제물의 완전한 희생과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감사하며 예배합니다.

그 토대에는 번제단에서 태워진 제물과 같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다 소멸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제물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제물의 앞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입니다.

나머지는 제물을 드린 사람과 일행들이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주로 삶아서 나누어 먹었던 것 같습니다.

다섯가지 제사 중에서 예배자들이 먹는 유일한 제사가 이 화목제입니다.

 

3.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함께 먹는 화목제라는 제사를 제정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주신 화목은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과의 화목입니다.

또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 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711,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라고 하나님이 일부러 제정하신 제사입니다.

감사제의 경우 제사드린 당일에 고기를 다 먹어야만 합니다.

각자 성읍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제사드린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화목제엔 함께 먹을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죠.

소 한 마리를 잡는다면 몇 명이 먹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소가 개량되어서 무게가 4백킬로 정도 나갑니다.

옛날에는 2백킬로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물로 드린 소는 보통 송아지였습니다.

큰 소의 절반으로 잡으면 백 킬로 되겠죠.

백 킬로 고기를 종일 다 먹으려면 사람이 몇 명이나 모여야 할까요?

아마도 몇 십명이 모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왜 화목제를 지내라고 하셨는지 짐작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어릴 때 고기 먹기가 어려웠는데, 옛날에는 더 했겠죠.

화목제를 드릴 형편이 된다면 아마도 마을에서 꽤 잘 사는 집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 감사하며 소 떼 중에서 한 마리쯤 내 놓으라시는 것이죠.

가난한 동네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먹으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더 받은 것이 있습니까?

물질이든, 재능이든, 믿음의 분량이든, 부족한 성도들을 채우고 교회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16절을 보면, 서원제와 자원제는 다음 날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서원이나 자원제의 경우는 개인적인 일이라 가족끼리 왔을 것입니다.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드렸다 해도 하루에 다 먹기는 양이 많죠.

그래서 다음날까지는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신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예배는 주님 편에서만 생각하신 게 아닙니다.

우리 편에서 최선을 다해 드리는 예배지만, 하나님 역시 우리를 세밀히 배려하신다는 것이죠.

우리의 주일 공동 식사는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화목제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예배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실 때 하나님도 즐거워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화목제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로 예배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화목제의 제물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 간에 화목을 주신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볼 때 주님의 몸을 주신 성찬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공동체는 예수님의 몸이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갈등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주님의 몸을 찢고 허무는 것입니다.

내 화목제 제사에 초대하지 못할 사람이 없도록 좀 더 마음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나산의 성도들이 늘 화목제 드릴 제목이 넘쳐 나서 매 주일이 잔치하는 예배가 되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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