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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참는 자는 복되다 (야고보서1장9절-18절)
남수연 2025-01-22 추천 0 댓글 0 조회 74

오늘은 시련과 인내 2탄입니다.

특히 요즘의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고보는 바울사도처럼 논리적이기 보다는 직관과 통찰이 뛰어납니다.

바울처럼 학문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지만 성경에는 능통했다는 걸 사도행전과 야고보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오랜 기도를 통해서 뛰어난 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의 편지엔 마음이 뜨끔하게 하는 촌철살인 표현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시련을 잘 이해하고 이길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소망합니다.

 

1. 성도들이 만나는 시련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지난 주는 유대인들의 박해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시련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 자진 해서 박해를 당하고 고난을 선택한 것이죠.

이렇게 자원해서 받는 시련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헌신과 봉사도 이렇게 자원하는 시련입니다.

이런 시련들은 본인이 원치 않으면 피할 수도 있는 시련이죠.

시련 중에는 본인의 뜻에 상관없이 꼼짝없이 겪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타고난 조건과 환경, 질병, 사고나 재난,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고통 같은 것입니다.

이외에도 본인의 잘못이나 실수, 죄 때문에 겪는 시련이 있죠.

이런 걸 보면 우리 인생이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이해가 됩니다.

시련이 없을 때가 더 이상한 것이죠.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나머지 두가지 시험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 삶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치 않게 마주치는 시련입니다.

일례로 9절과 11절은 물질 때문에 오는 시련입니다.

물론 돈뿐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건강, 재능, 권력, 그런 모든 것도 해당이 될 것입니다.

사는 게 힘든 이유 중 아마도 돈 때문이 반 이상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돈만 많아도 피할 수 있는 시련이 많죠.

가난은 자기의 잘못일 때도 있고,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믿음을 넘어뜨리는 시험이 되기가 쉽습니다.

야고보 당시의 성도들은 자발적인 고난을 택한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나의 구주시다, 이 믿음을 사수하기 위해 안정된 삶의 터전을 두고 흩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십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고향을 떠났던 성도들은 외국 땅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엔 언제나 빈부의 차이가 생기죠.

디아스포라 성도들 사이에도 정착해 자리를 잡고 안정되게 사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한 삶인데, 가난이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이 된다면 시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돈이 돌고 도는 게 아닙니다.

가난하게 시작한 사람들은 평생 돈 걱정하며 살기가 쉽습니다.

재산이 없으면 고정된 월급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늘 쪼들리죠.

수입보다 더 많이 지출해야 할 일도 생깁니다.

결국 연말에 보면 돈을 벌긴 벌은건지, 남은 돈은 거의 없잖아요?

아무리 믿음이 좋고 성실하게 산다 해도 다 부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기회가 와서, 아니면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 있어서 부자로 잘사는 성도들도 있는 것이죠.

현재에 감사하다가도, 빠듯한 삶에 지치고 물질로 인해 어려움이 닥치면 믿음도 서서히 힘을 잃게 됩니다.

내게 흙수저를 물려주신 하나님께도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이런 문제로 시험에 들고 믿음이 약해지는 성도들에게 야고보사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세상의 관점에서는 논리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일을 하며 물질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 멀리 보고, 죽음 너머까지 보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이 어떻든 그 시선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게 세상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고 하나님나라의 주인입니다.

아무리 부자가 부럽고, 돈이 커 보여도, 하나님나라에 대 보면 티끌 같아지는 것이죠.

억지로 이렇게 위로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믿음이 이생을 넘어 영생을 자꾸 보게 되면 점점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현재 우리 고통을 모르시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뎌 낼 수가 있겠습니까?

한 두번의 기도응답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현재의 모든 시련을 직시하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내세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짐을 다 내려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영원히 고통 없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그 많은 시련들마다 어떻게 이겨낼 수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또 다가오는 시험을 이겨낼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대로 성령님의 지혜를 구하며 더디더라도 인내하며 감당해 나가면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내 정체성을 깃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반면 부한 자들에게도 말씀합니다.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부자가 돈 자랑 안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자기가 너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부자들이 자랑해야 할 것은 자기의 낮아짐이라는 것입니다.

부자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10절에 나오죠.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이것은 부자의 돈이 쉽게 사라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하죠.

이 말씀은 부자의 돈은 남을지라도, 당사자인 부자는 세상에 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고이건희회장이 삼성이 반도체로 한창 성장하던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십 년 뒤의 먹거리가 걱정이라는 거예요.

그 말이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상황을 보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올초 삼성가 가족들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이 작년 일 년 사이에 십조 육천 억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주가 급락으로 재산 1/4이 단 일년 사이에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죠.

그래도 이재용회장의 재산은 현재 124천억입니다.

그렇게 돈은 남았지만 이건희회장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간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될 것을 지금 땡겨서 안다면 내가 가진 부와 지위와 인기와 실력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됩니다.

11절에서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이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부한 자가 행한 일도 한순간 쇠잔 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부활절즈음에 가면 들판이 꽃으로 뒤덮여 장관입니다.

그런데 그때를 딱 지나면 하루 아침에 화초가 다 누렇게 시들고 말라버립니다.

왜냐하면 사하라사막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세 좋게 들판을 덮었던 꽃들이 단 하루만에 시들어 버립니다.

이것처럼 땅의 재물은 나 사는 동안에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미국 LA에서 발생한 산불의 피해가 이백이십 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이 육백조를 좀 넘는다고 하니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죠.

미국에 가보면 어쩌면 집들이 저렇게 예쁠까 놀라게 됩니다.

이번에 메이저리거인 박찬0씨의 집도 전소되었다고 하더군요.

3년 전인가 방송에 박찬0씨 집을 촬영해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아주 평화롭고 멋진 고급 주택가였습니다.

집에 수영장이 있고 인공폭포까지 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딸 셋과 함께 오순도순 음식을 만들던 포근했던 주방까지도 모조리 다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때로 물질은 그렇게도 사라집니다.

돈이 구원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갈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부자의 낮아짐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많은 것을 가졌지만 자기 영혼이 얼마나 악하고 비천한지를 깨달았다면, 그 사실만으로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니었다면 자기가 가진 금과 함께 망했을 것이잖아요?

낮은 자가 자랑해야 할 높음과 부자가 자랑해야 할 낮음은 결국은 똑같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구주 예수님과 받은 구원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시험은 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이런 말씀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시험이 없는 것이 복되다고 하지 않습니다.

시험이 없는 것보다, 시험을 참고 견디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다소 생소한 말씀이죠.

우리는 믿음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믿잖아요?

그런데 야고보사도는 시련을 참고 견디어 낸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참고 견디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12절에 이렇게 견디는 사람들을 보고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살다 보면 견디기도 버거운 시련이 있습니다.

그냥 죽지 못해 버티고 사는 것이죠.

그래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의심을 하면서도 떠나지 않고 견디는 사람을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라고 하시죠.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죄의 유혹을 당해서 시련에 빠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가장 좋지 않은 시련이죠.

도박, 성 문제, 혈기, 허영과 허세, 일탈, 잘못된 판단, 등등의 좋지 않은 행동의 결과로 겪게 되는 시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험에 넘어지고는 하나님 탓을 한다는 것입니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 시험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유혹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낫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고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 탓을 하죠.

대표적인 게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아담이 죄에 빠지게 했냐는 것입니다.

아담이 먹을 것을 아셨는데 선악과를 만드셨으니 죄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죠.

내가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망하게 두셨냐고 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기댈 언덕이라도 갖고 태어났다면 이렇게 고군분투하다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나님 탓을 하는 것이죠.

죄를 지으면서도 태어나보니 죄인인 데 어떻게 하냐고 합리화시킵니다.

일말의 책임이 하나님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사도는 단호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시고 다른 누구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하는지 시험해 보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두고 하나님 책임이라는 사람들은 세상 끝날 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하나님은 아담을 시험해 보려고 선악과를 둔 게 아니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악과는 결혼반지와 같은 것입니다.

결혼반지는 우리 서로에게 신실하자, 우리 끝까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죠.

결혼반지를 상대에 대한 올가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두고 창조주로서 영원히 돌봐주시겠다는 신실한 사랑을 약속한 것입니다.

사람은 선악과를 두고 피조물로서의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성실한 사랑을 약속한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독단적으로 살려는 욕망에 이끌려 미혹된 것입니다.

그 결과 사망이 온 것이죠.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내 욕심대로 살다 보면 그 결과 점점 죄에 빠지고, 영으로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기에 성령의 능력이 소멸됩니다.

내 힘으로 해 나가다보면 일도 생활도 인격도 실패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오는 관계의 어려움,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방법은 앞에서 기도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내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3.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지만, 실상 하나님은 지금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오나니

그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속지 말라

시련이 올 때마다 훅 들어오는 생각, 하나님이 너무하시다는 생각을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한 모든 환난과 실패 중에도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시려는 어떤 악한 동기가 없으십니다.

17,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세상에 있는 빛들은 반드시 어둠을 만듭니다.

한낮의 태양이 강렬할수록 그림자도 강해집니다.

야고보사도는 당시 해시계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빛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신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같은 악한 생각이나 나쁜 동기가 있다는 듯, 그래서 나를 괴롭히신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시험에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당하는 시련 중에는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 죄와 악이 이토록 가득 차게 만든 것은 다 사람들 자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들 아닙니까?

인간들의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18절에서 하나님은 오히려 그 속에서 어떤 선한 일을 하셨는지를 보라고 합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서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낳은 사망의 자식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들로 낳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낳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믿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도 똑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렇게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나의 고통을 관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가 되면 또 하늘로부터 온전한 선물을 주실 하나님을 믿고 시험의 때를 잘 이겨내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내 자리가 너무 낮은 곳에 있으십니까?

실상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려주셨는지를 자랑하십시오.

내게 자랑할 것을 많이 주셨습니까?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된 나를 자랑하십시오.

항상 내 주님이신 예수님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택한 고난이든,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시련이든, 나의 잘못된 행위로 찾아온 고난이든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견디는 우리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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