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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교회 사자에게 편지하라 (요한계시록2장8절-11절)
남수연 2025-07-09 추천 0 댓글 0 조회 38

지난 주 요한계시록의 서론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 보내시는 편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소아시아는 바울사도의 전도 요충지였죠.

사도행전19장을 보면 바울이 소아시아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서원에서 2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가르칩니다.

그때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대부분 바울의 전도로 세워진 것이죠.

이후 40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소아시아에서 번성했던 교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한사도가 전한 예수님의 메시지에서 그 실태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곱교회를 분석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을 주신 목적은 결국 성도들이 마지막까지 어떻게 믿음을 지킬 것이냐를 가르치시려는 것이죠.

그동안 매일성경으로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을 잘 묵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간략하게 복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부분이 교회가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일곱 교회가 자신을 알았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겠습니까?

말씀이 조명해 주지 않으시면 우리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나의 어떤 부분을 예수님이 인정하시는지, 아니면 회개를 촉구하시는 지 속으로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1) 에베소교회는 바울사도가 오래 목회했던 곳입니다.

바울의 철저한 지도 덕분에 스스로 이단을 감별하며 진리를 지켰다는 칭찬을 받습니다.

,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잘 배우고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진리의 지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리 되신 예수님과의 관계성이라는 방향을 항상 잃지 않아야 합니다.

2)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 중에도 믿음을 지킨 교회로 칭찬받습니다.

잠시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버가모교회는 안디바라는 순교자가 나올 정도로 믿음을 지킨 것을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른 것을 책망받습니다.

세속과 이단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죠.

사람이 큰 승리나 성공 뒤에는 의외로 취약한 곳이 쉽게 드러납니다.

사탄은 그것을 파고 든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4) 두아디라교회는 믿음의 선한 행위들을 칭찬받습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그로 인한 음행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우리 신앙에 좋은 점들이 있다고 나쁜 점들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선한 행위만큼 악을 행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5) 사데교회는 이름만 교회라는 부끄러운 평가를 받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분명히 교회임에도, 그리스도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이름만 가졌지 주님의 생명은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교회에 무늬만 신자들이 많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6)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교회임에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것을 칭찬하십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일곱교회 중에서 칭찬받은 두 교회가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 속에 있었고, 빌라델비아교회는 능력이 작은 교회였다는 게 시사하는 바가 크죠.

우리가 늘 낙심하는 이유가 그거잖아요?

환난과 궁핍에 시달리고, 그것을 해결할 능력도 없다는 데 낙담하죠.

그러나 그게 오히려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7) 라오디게아교회는 풍요 속에 빠진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받습니다.

예수님이 차든지 덥든지 하지 않으면 토하여 내리라고 했던 교회죠.

세상과 적당히 혼합된 신앙입니다.

한동안 대형교회들이 앞을 다투어 문화적인 교회가 되자고 했습니다.

세상을 잘 알아야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짠 맛을 잃고 길에 버려져 밟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리 죄성이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 몰랐던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죠.

세상도 예수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어정쩡한 신앙의 스텐스를 주님께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일곱교회의 평가는 우리 안에도 조금씩 다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말씀대로 진단하고 바로잡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일곱 교회 중에서 오늘 읽은 서머나교회에 대한 묵상을 나누겠습니다.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되

편지를 받는 수신자는 서머나교회입니다.

발신자는 예수님이신데, 두 가지 표현으로 자신을 밝히시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님에 대한 어떤 부분을 깨닫게 하시는 데는 그게 필요할 때입니다.

불안할 때 주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으로 다가오십니다.

내 힘의 한계에 주저앉을 때 능력의 주님으로 오셔서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자기 계시도 서머나성도들의 상황을 알고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1)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신 본질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446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서머나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황제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않음으로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서머나성도들의 손을 들어주시는 것이죠.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

어떤 위협이나 칼이나 유혹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날고 뛰는 권력이라도 우리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서머나는 현재 도시 명칭으로는 튀르키예의 이즈미르입니다.

지난 주 산불로 5만 명이 대피하고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죠.

이즈미르는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튀르키예 제3의 도시입니다.

계시록 당시 서머나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였습니다.

항구도시는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라 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울산이 자동차와 조선소 덕분에 큰 호황을 누릴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도시였죠.

그때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장생포에 가면 만원권을 물고 있는 개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서머나가 그런 도시였던 것이죠.

그런데 서머나교회의 성도들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궁핍이라는 단어는 특히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말합니다.

궁핍의 이유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당시 황제인 도미티안를 신격화하는 정책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매년 가이사 제단에 분향하고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시에서 발부한 이 증명서가 없이는 모든 상업과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죠.

흥청망청 돈을 쓰며 살아가는 서머나시민들 중에서 유독 서머나교회성도들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던 것입니다.

서머나성도들의 이런 형편을 예수님께서 다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머나에서 제일 부요한 사람들이 서머나교회 성도들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예수님의 평가에 더 관심을 둬야 합니다.

지금도 성도들은 세상 사람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불리합니다.

정직하게 장사하면 당장은 돈도 많이 못 법니다.

주일에 가게 문도 닫아야 합니다.

여기저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신경쓰다 보면 그나마 저축할 돈도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실상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은 궁핍을 크게 궁핍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이 많은데도 왜 돈을 더 못 가져서 안달입니까?

가졌는데도 자꾸 궁핍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 말씀대로 천국에 보물을 쌓아 놓은 사람들이잖아요?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 주님께 드린 헌금, 시간, 봉사, 기도, 예배, 경건생활, 이런 것들이 어디로 간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그냥 먹고 즐긴 것들이야말로 사라진 것입니다.

주님과 관련해서 사용한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자랑이고 자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서머나교회에 닥칠 순교를 미리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머나교회에는 요한사도의 제자였던 폴리갑을 포함해 여러 명의 순교자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도 이길 힘이 됩니다.

또 죽음 같은 인생의 모든 환난도 이길 힘이 되는 것입니다.

 

2. 로마 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서머나교회를 박해했습니다.

바울사도의 전도사역에서도 가장 많은 박해와 피해를 준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서머나에는 오래 전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더 나았던 유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서 주님은 9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시듯이 유대인들의 악행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악인들의 악행을 다 보고 계시다는 것도 나름 위안이 되죠.

우리가 힘든 환경에서 고군분투할 때 예수님이 이런 나를 알고 계실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면 오늘 이 말씀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지금 나를 괴롭히는 상황을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이 아신다는 것은 방관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서머나교회에게 당분간 더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하십니다.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마귀가 성도들을 감옥에 던져 넣고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받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고 하십니다.

10절하,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10일의 의미가 무엇일까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죠.

가장 중요한 뜻은 예수님이 고난의 기간을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10일은 긴 시간일까요, 짧은 시간일까요?

우리나라 아리랑 가사에 보면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말이 나오죠.

십 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거리도 아닙니다.

십 일의 의미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기한을 정하십니다.

저도 육 년이라는 기한을 정하시고 경제적인 연단을 하셨습니다.

질병이든, 사람 관계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무한정 고통을 겪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극심할 때는 그런 생각이 들죠.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내게 다시 행복이란 게 찾아 올까?

믿음으로 버텼더니 분명히 새로운 시작의 시간들이 돌아오더군요.

다시 웃음이 나오고, 마음에 감사가 가득하고, 행복을 느끼는 그런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궁핍 중이라도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 곧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죽도록 충성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은 충성이 곧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내면의 믿음이 밖으로는 충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서머나교회가 황제숭배를 거부할만한 믿음은 한순간의 결심으로 된 게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을 증명해야 할 때가 올 때 당당히 예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계속 믿음을 잘 키워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5년7월9일 수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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