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앞으로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될 배경과 전체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요한계시록은 요한사도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요한 노년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받은 말씀을 적어 보낸 서신입니다.
요한계시록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십니까?
신자들이나 비신자들이나 지구의 종말을 떠올릴 것입니다.
요즘 같은 때 계시록을 읽으면 그런 기분이 더 날 것 같습니다.
7월5일이 무슨 날인지 혹시 들어보셨나요?
일본 난카이에 백년 주기로 일어나는 대지진이 발생한다는 날입니다.
이 대지진설은 한 일본작가의 만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가 오래전 ‘내가 본 미래’라는 만화를 그렸는데, 거기서 동일본지진이 일어난 때를 맞췄다는군요.
그리고 그 작가가 최근 다시 반복적으로 대지진의 꿈을 꾸었고, 이번엔 난카이대지진을 예언한 것입니다.
일본정부는 올 7월은 아니라 해도, 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80%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30만명 이상 사망자를 예상하고 피해를 줄일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규슈 인근에서 열흘 사이에 650회 이상 땅이 흔들렸다죠.
결국 7월 대지진설은 헛소리라고 일축하던 일본정부도 대지진에 대비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요즘 유럽과 미국에서는 40도를 넘기는 역대급 고온이 닥쳤다고 합니다.
파리의 에펠탑이 휘어질 수도 있다는 기사가 나왔더군요.
이런 이상기후들 속에 사람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지구 종말을 떠올리며 불안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계시록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중요한 예언이 담겨 있지만 그것만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2.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성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장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곱 교회에 주시는 책망과 격려의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서신서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은 로마제국의 종말과 지구의 마지막이 묵시문학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와 새하늘과 새땅을 보여줍니다.
창세기의 창조에서 시작한 성경이 계시록에서 마지막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며 모든 구원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이죠.
계시록의 예언 부분은 ‘난카이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렇게 사실적 언어가 아닌 상징적 언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난해하면서 신비한 느낌이 들죠.
그렇게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사도가 이 편지를 쓰던 당시는 로마제국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로마제국이 영원할 거라 여겼습니다.
로마가 무너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지금으로 치면 미국이 무너진다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요한계시록 당시는 도미티아누스황제의 신격화가 극도에 달했던 때입니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는 위기를 만난 것이죠.
일제강점기 때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강요받았잖아요?
처음엔 박해를 견뎠지만 결국 신사참배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칠 년 뒤 해방이 된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 큰 오점을 남긴 것이죠.
계시록 당시 교회의 두려움의 대상인 로마제국이 멸명 한다는 메시지를 사실대로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666 같이 숫자나 상징적인 언어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요한계시록 대부분의 내용은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받을 사람들은 그 시대의 성도들입니다.
요한사도가 수천 년 뒤의 먼 미래의 지구종말을 써서 보냈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당시 환난을 겪고 있는 성도들과 관련 된 편지입니다.
1절에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시잖아요?
요한계시록이 밀서와 같아서 엄청난 비밀을 풀어야 한다는 것은 오산입니다.
모든 예언을 완료한 뒤에 천사가 말합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즉 시대에 인접한 사건들이라 미리 알려주시고 대비하라시는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성도의 박해만 예언한 게 아닙니다.
전쟁과 재난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도 점점 더 환난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구원과 심판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계시록은 생생히 보여줍니다.
어느 시대에나 성도들의 환난은 존재합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마지막 승리를 보장하며 용기를 주는 말씀인 것이죠.
요즘과 같이 믿음으로 사는 게 어려운 시대엔 더욱 펴서 읽어야 할 성경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신비는 성도들의 믿음을 각성시킨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때로 우리만 빼고 다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을 때가 있죠.
세상에 묻혀 가고 싶은 생각이 성도들을 현혹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무너질 세상과 영원한 세상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앞으로 요한계시록 매일성경을 묵상할 때 믿음의 각성이 있게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3. 서론 부분을 살펴봅니다.
1) 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아주 분명합니다.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조금만 견디면 모두가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장년 성도님들은 한 오십 년 안이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때까지 견디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부분적으로 보이시던 세상의 종말과 심판을 본서에서 적극적으로 계시하십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믿음을 지키게 보호하시는 것이죠.
또 끝을 알면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좀 쉽잖아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종말을 인식하고 항상 각성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지키며 사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편지를 쓰는 사람과 편지를 받을 수신자가 누군지가 나옵니다.
4절,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하노니
사도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일곱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그 시대에 실제로 존재하던 교회들입니다.
당시 유럽에도 우리가 아는 대로 빌립보교회도 있었고 고린도교회도 있었죠.그런데 왜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교회에만 이 편지를 보냈을까요?
우리는 요한복음을 많이 읽어서 요한사도의 사역이 활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도행전8장 이후에 사도요한의 행적은 묘연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셨기에 두드러진 선교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증인인 마리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위협이 컸겠죠.
마리아가 죽은 뒤에 요한사도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를 돌보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모든 사도들이 순교한 후죠.
편지를 기록하는 밧모섬도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현재 요한의 무덤교회가 있는 곳도 에베소에서 가깝습니다.
3) 서론에서는 앞으로 계시록에 전개되는 모든 역사를 누가 주관하시는지가 매우 강조됩니다.
오늘 읽은 편지의 서문엔 일반적인 인사와 다른 특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삼위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비는 게 서신서의 형식입니다.
그런데 요한사도는 반복해서 삼위하나님을 계속 언급하는 것이죠.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 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에 있을 성도들의 승리와 구원의 완성을 요한은 보았잖아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보고 깨달았을 때 그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천국으로 인도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왜 택하시고 구원하셨는지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그것도 삼위의 하나님께서 똑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요?
그 감격과 감사는 영원히 파도처럼 계속 몰려올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질리지 않고 우리의 감사와 감격도 그럴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 서두에서 요한사도의 그런 감격이 저는 느껴집니다.
4) 그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사랑을 누릴 성도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잠시 환난과 수치와 모욕을 당한다 해도 이미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성도들은 세상의 희망인 제사장입니다.
우리 가정과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의 역할을 잘하면 우리도 복되고 그들도 하나님을 알고 평안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죠.
한국교회가 조국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편지를 받을 성도들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의 사명을 해냈을까요?
당연히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박해하던 로마제국은 결국 그들의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잖아요?
나를 세우신 곳에서 모두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축원드립니다.
5)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계시록의 결론을 요한사도가 참지 못하고 터트립니다.
7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모든 역사의 종말에 대한 선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악의 권세와 세력들을 다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7절은 메시야 재림에 대한 구약성경 스가랴서의 예언과 동일합니다.
스가랴나 요한이나 똑같은 재림의 장면을 환상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죠.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걸 직접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선지자는 주님 태어나기 600년 전 사람입니다.
메시야가 창에 찔리고 못 박히는 고난의 환상을 미리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대체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그러나 스가랴도 요한도 예수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것도 본 것입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조롱하던 모든 사람들도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벅찬 기쁨으로 맞이하느냐, 절망과 공포 속에서 맞이할 것이냐.
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고 힘든 믿음의 여정을 굳건히 가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주님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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