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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자인가 (누가복음14장25절-30절)
남수연 2025-03-27 추천 0 댓글 0 조회 44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맞춰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노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신하며 그 길을 따랐습니다.

이번 유월절엔 뭔가 큰 일이 일어나겠구나 그런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겠죠.

그때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고 무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1.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제자의 커트라인이 너무 높지 않습니까?

이 말씀대로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지금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주님이 버리라는 그 행복을 위해 따르는 사람들이잖아요?

이제 곧 로마의 압제를 벗어나 활개 치며 살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소문은 광야에서처럼 매일 식료품을 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게 했겠죠.

이젠 더 이상 질병 걱정도 안 해도 되잖아요?

민족의 전설인 줄만 알았던 그 메시야라는 분이 정말 눈 앞에 나타나다니.

앞으로 우리 민족은 얼마나 영광스럽게 발전할 것인가?

사람들의 소원은 다 잘 사는 것입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현대차 정의선회장이 트럼프대통령에게 31조원 투자 선물을 안겼더군요.

철강소를 짓는 애리조나엔 일자리 1300개가 더 생길 거라고 합니다.

미국민들도 그렇게라도 잘 살게 해 주길 바랬기에 말도 많은 사업가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겠습니까?

지금 바라던 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계란 값도 한 개에 천 원이 넘고, 소비심리가 얼어 붙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을 뽑을 때마다 우리도 혹시나 그런 마음들이 있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본심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구원은 물론이고 기왕이면 좀 편히 살게 해 주시고, 큰 병 안 나고, 자식들 잘되고.

큰 욕심도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능력도 있으시구요.

그런데 예수님은 정 반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부모와 처자식과 자기의 안위와 행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그걸 오히려 다 버리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사람들이 가졌던 지금까지의 호감은 반감으로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 생각이 틀린 것 아니야?’

그러니 그 누구도 예수님의 이 기준을 갖추고 와서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제자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두제자를 보면 알 수 있죠.

우리가 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가 되었다 해도 이 제자의 기준에 금방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행복이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그걸 바라지 않는 것은 어렵죠.

예수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종종 눈 앞에 있는 이익과 죄의 즐거움에도 빠집니다.

내가 바라는 욕심과 세상을 택할 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라면 결국 주님 말씀대로, 주님을 섬기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은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는 누구보다도 스승을 가까이 하고 잘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런 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가까이서 잘 배워서 알라는 것이죠.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최고가 될 자신이 있으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알아가는 일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주님이 나의 최고가 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것들이 하나씩 떠나가도 우리는 지금 여전히 예수님의 손을 잡고 있잖아요?

그렇게 남은 우리 평생에 사람도 떠나고, 건강도 떠나고, 재산도 다 없어지겠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결국은 주님이 최후의 승자가 되실 것입니다.

 

2. 왜 제자가 되려면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해야 합니까?

이것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라기 보다는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과 기존의 가치들과의 우선순위를 점점 분명하게 정해가야 합니다.

매 주일 예배를 참석하는 성도들은 주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진 분들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과가 습관이 되었다면 하루의 우선순위가 정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내 생활과 인생에서 주님을 따르는 일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쳐내며 예수님이 우선 순위가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고 있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다수가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가치의 비교표를 견고히 구축해 가지 않으면 늘 세상 가치에 굴복하고 결국 신앙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신앙의 위험을 망대를 짓는 일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제대로 계산도 안 하고 건축을 시작했다 비용이 다 떨어지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죠.

짓다가 만 건축물들이 얼마나 흉물스럽습니까?

거기에 들어간 비용은 얼마나 막대합니까?

짓다가 만 건축물은 누군가의 파산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을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연구소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코로나 이후에 성도들의 신앙이 양극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신실하게 믿던 성도들은, 더 주님을 따르고 더 헌신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구원의 확신 없이 어중간했던 신자들은, 믿음이 더 약해졌다고 답했습니다.

계시록22장에서 말세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신 그대로 아닙니까?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개인의 신앙도 자기 인생의 마지막이 될수록 어느 쪽에 속했는지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너희 마음을 보니 제자 되기는 글렀으니 돌아가라

이런 뜻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걸 바꿀 생각은 없잖아요?

다만 내게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것, 더 좋아하는 것, 더 높은 자리에 앉힌 것이 없는지 늘 점검하며 따라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최우선이지만, 언제든 육신이 끌리는 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항상 성령을 구하고 그 충만함 속에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따라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제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우리에게 십자가는 아름다운 상징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 졌을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보아왔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로마의 반역자들이 고통스럽게 매달려 있던 형틀입니다.

그들의 귀에는 주님의 말씀이 이렇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이 혁명이 실패하면 나하고 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사람만 따르라

그게 아니라,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 사명입니다.

1)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십자가에 옛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우리가 함께 새생명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옛사람의 잔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사람 편입니다.

그 옛사람을 평생 죽이며 새사람으로 사는 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우리나라 선교 초창기 때 일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어느 날 밤 청년 세 명이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복음을 드러내고 전하는 것이 위험한 상황이라 이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은 황해도에서 왔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고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세례 줄 목사님이 없어서 먼 길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선교사가 못 믿겠다는 내색을 하자 청년들이 두루마기를 벗었습니다.

청년들의 등에는 나무 십자가가 하나씩 지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십자가를 만들어 지고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수하고 어리숙한 신앙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깊은 감동을 받고 청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청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딱딱한 나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게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밤에는 내려 놓았을까요?

영원히 십자가를 지고 따르기로 결심했기에 어쩌면 등짐처럼 십자가를 지고 옆으로 누워 불편하게 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그런 불편함이 있습니까?

매일 등에 딱딱하게 부딪치는 십자가를 청년들은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았던 날이 하루라도 있습니까?

나쁜 말을 안 하려고 온종일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운 적이 한번이라도 있습니까?

옛사람의 나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우리가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을 위한 고난과 사명을 위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나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들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가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가 자기 십자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방탕한 자식이 내 십자가려니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 된 세상에서 누구나 겪는 고초이고 시련입니다.

인생의 모든 비참과 괴로움 자체가 다 십자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 시련 중에 믿음으로 연단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의 삶의 고난도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명과 고난의 십자가를 주님은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또 다른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고 섬기려고 애쓰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회 끝나고 전도를 위해 거리로 나갑니다.

내 성품을 말씀대로 바꾸는 십자가는 너무 힘들다

맞습니다, 힘들죠.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기엔 내 삶이 현재 너무 곤고하다고 바쁘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동안 생활고는 끝이 없습니다.

병들고 늙어 기운이 다 빠지지 않는 한 언제 한가한 때가 있겠습니까?

그때 가서 어떻게 십자가를 지겠습니까?

지금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충실히 십자가를 질수록 구질구질한 짐들을 하나님께서 놀랍게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는 오히려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가지 않게 합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사탄이 성도들을 시험하려 밀 까부르듯 한다는 것입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진 성도들은 유혹에 흔들릴 틈도 없습니다.

내 십자가가 무겁기에 한 눈 팔 틈도 없이 주님만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오히려 인생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주저앉을 것 같기에 믿음의 십자가를 지고 앞만 보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2025년3월26일수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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