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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베드로전서1장13절-16절)
남수연 2020-04-28 추천 0 댓글 0 조회 730

우리나라 상공에 두껍게 덮여있던 코로나19의 짙은 연무가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걷힌 자리에 드러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코로나로 인해 주목받지 못했던 갖가지 범죄인 것 같습니다.

요 며칠 뉴스를 보면 지자체단체장의 성범죄부터 시작해서 아내의 친구를 차로 납치해 폭행하고 죽이고 돈을 갈취한 끔찍한 범죄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죄의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삶을 붕괴시킬 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불행을 감염시키죠.

오늘 나눌 본문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지는 베드로사도의 편지입니다.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신앙을 위해 그동안 일구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나그네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한번 크게 헌신했다고 내일의 믿음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큰 고난을 뚫고 나그네 삶을 선택한 성도들에게도 이제 편히 지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를 때만 우리는 평안히 지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베드로사도를 통해 주신 성도들의 거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성도란 이름처럼 거룩을 위해 힘쓰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1. 오늘 편지에서 베드로사도는 장차 받을 영원한 유업에서 절대로 관심을 돌리면 안된다고 강력히 권고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를 통해 얻은 산 소망과 하늘에 간직해 두신 유업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이것은 이미 구약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하죠.

하나님이 대체 어떻게 범죄 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건지, 성령의 감동을 받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고 부지런히 연구해서 성경에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조차도 이 신비를 알고자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죠.

그 비밀한 구속의 뚜껑이 열렸을 때, 모두가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으로 성육신하셔서 스스로 인간의 죄를 떠안고 심판을 당하시는 시나리오를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귀도 예수님의 속죄의 비밀을 몰라서 갈팡질팡 했습니다.

알았다면 아마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끌어 내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다 드러난 것 같지만 사실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내 머리와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에 대해 계속 배우며 성령 받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놀랍고 큰 사랑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유업을 지금 소중하게 하늘에 간직해 두셨습니다.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그것을 기대하고 절대로 관심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소중해요.

예수님의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준비한 것이잖아요?

지난 주 천국의 유업에 대한 말씀을 듣고 한 주간 이 소망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내지는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기대감을 놓친 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너무 좋은 걸 손에 쥐려는 순간, 놓칠까봐 조바심이 나죠.

꼭 사고 싶은 홈쇼핑 상품을 주문하려는 데 화면엔 매진 임박이 뜨면 주문하는 손이 허둥대잖아요?

제가 진짜 막 주문하려는 순간 완판 돼서 못 산적이 있는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왜 부모가 늘 자식들 공부에 실랑이를 합니까?

우리 아이가 미래가 달린 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데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만하니 조바심이 나는 것입니다.

저걸 놓치면 어쩌나

베드로사도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너희 앞에 이렇게 좋은 유업이 있는데 그것을 못 참겠느냐는 것이죠.

절대로 마음을 풀어 놓지 말고 끝까지 중요한 것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신해야 한다고 성경은 누차 강조해서 명령하십니다.

성경에서 근신은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는 맑은 정신이고 방심하지 않고 자신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눈을 돌리면 사실 그 순간 우리는 세상에 사로잡힙니다.

제가 며칠 전 설교를 준비하는 데 너무 잠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잠 좀 깨려고 유튜브에 들어가서 노래 한 곡을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찬양을 들었어야 하는 데 가요를 들었습니다.

요즘 조명0 이라는 아주 젊은 가수가 현인씨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딱 그 느낌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어릴 때 추억에 젖어서 대여섯 곡을 냅다 들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이 깨서 설교를 준비하는 데, 머리속에서 신라의 바아암 이이여어어가 자꾸 맴도는 거예요.

궁금하다고 집에 가서 듣지 마십시오.

부작용이 심합니다.

물론 세상의 문화와 풍속들을 완전히 벗어나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젊은 가수가 인터뷰하는 걸 듣다 깨달은 게 있습니다.

이 청년이 얼마나 옛가요에 심취 해 있는지 요즘 노래와 아이돌을 거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할머니한테 좀 들어서 안다고 해서 다 웃었습니다.

스물 두 살의 청년이 옛가요를 사랑하니까 젊은이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요즘 것에 아무 관심도 없더군요.

그걸 안 따라하고, 몰라도 이 가수에겐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현대의 신자들은 세상에 뒤질세라 최신 유행을 좇고, 세상에서 좋은 것을 더 만져 보려다 점점 세상에 취합니다.

정작 중요하고 좋은 것에 대해 이 젊은 가수만큼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그 나라를 기대하고 준비한 신부들이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다시 흐트러진 마음의 허리를 꽉 동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바라보아야 할 것으로 시선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지금 해야 할 일들과 내 일상들도 영원한 내세의 관점으로 본다면 의외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명쾌하게 보입니다.

모든 일을 영생의 렌즈를 통해서 본다면 훨씬 단순하게 중요한 걸 구분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의 렌즈가 흐려졌다면 오늘 다시 깨끗이 닦고 분명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또 오늘 말씀 중에서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은 성도들의 거룩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고 하시잖아요?

오늘날 강단에서 사라진 성경말씀이 있다면 아마 거룩함에 대한 설교가 아닐까 합니다.

거룩에 대한 설교는 성도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설교라고 하죠.

오늘 거룩함의 유래를 들어보시면 분명히 거룩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입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인류를 구원할 예수님의 보혈의 강물이 힘차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 강물에 닿는 것들이 거룩해진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성경은 구원과 거룩을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그럼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거룩하면 세속과 단절된 종교적인 분위기가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거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15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 여기서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거룩은 유일하게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하나님만 가지신 아름답고 영광스런 본성 중 하나입니다.

종교적인 엄숙은 거룩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세속을 벗어난 종교의 옷을 입었다 해도 내면은 가장 세속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혹독하게 예수님께 질책을 받은 것이잖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보다 바리새인들이 더 엄숙하고 종교적이었습니다.

신앙의 언어로 은혜로운 문장을 구사해 말한다 해도 그 내면은 거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흰 상의에 검은 하의를 입고 각을 맞춰 앉아 엄숙하게 교주의 설교를 듣는 신천지 신자들은 자신을 거룩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흠이 없고, 죄가 없고, 어떤 오점도 없이 고결하신 하나님의 속성, 거룩을 절대로 사람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2)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피조물이 거룩해 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거룩하고, 하나님이 지나가신 곳이 거룩하고, 하나님이 만지신 것이 거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뒤로 그 거룩이 사람들에게 처음 적용됩니다.

출애굽기 196절에 거룩한백성이 처음 등장합니다.

(만일 너희가 나와의 언약을 잘 지키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세상에서 유일하게 선별 되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죠.

이어지는 성경 레위기는 죄의 본성에다 노예근성에다 애굽의 우상과 세속 문화에 찌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법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죄를 속죄하는 제사법이죠.

뿐만 아니라 정말 온갖 것들을 다 정결하게 하는 법령이 들어 있습니다.

백성들의 삶 전체가 다 더럽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 되는 데 실패하잖아요?
결정적인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렸으니 거룩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거룩하다는 말씀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을 통해 다시 거룩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첫 번째 거룩한 백성은 실패했지만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212절에서 이렇게 그 하나님의 계획을 전합니다.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사라졌던 거룩한 백성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죠.

그 배경에서 바로 메시야가 비밀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중심에 고난당하는 메시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하십니다.

주님이 오신 바로 그 목적,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이 실현되기를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성경에 수도 없이 반복해서 알려주십니다.

히브리서 1010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죠.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와 부활 이후인 사도행전, 서신서에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젠 너희가 거룩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아무에게나 거룩하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거룩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거룩해 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과 거룩하게 되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영광이고 자랑스러움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도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생명은 이전에 따르던 삶이 더럽고 추하다고 인식합니다.

더 이상 그런 삶에 만족할 수 없고 오히려 과거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자꾸 자신을 씻으려고 합니다.

거룩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이것이 거듭남의 척도이기도 한 것이죠.

그리고 베드로사도는 성도들은 계속해서 거룩을 이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구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성경은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하시죠.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받은 증거와 변화들이 점점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거룩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모든 죄가 씻겨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지만 그 증거들은 점점 삶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본질적인 거룩은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거룩을 수여받는 것입니다.

행실의 거룩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을 놓고 언젠가 나를 거룩한 신앙이 되게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거룩해져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14절에서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원 이전에는 우리가 다 자기 욕심을 따라 행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거룩을 방해하는 것은 꼭 흉악한 죄악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최선이 아닌, 나의 뜻인차선이 거룩을 방해합니다.

신자들은 이전처럼 고의적으로 악행을 하고 죄에 빠져 살지는 않죠.

사욕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에서 사욕이란 단어가 악한 죄보다는 욕망, 갈망이란 뜻입니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욕망인 것이죠.

최선인 성경을 묵상하는 것 대신 마음을 끄는 문학서적일 수 있습니다.

최선인 찬양 대신 감미로운 세상음악에 빠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최선인 기도 대신 눈에 보이는 봉사일 수 있습니다.

어제 잠깐 TV를 보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코로나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는데 IT기업임에도 재택근무를 못하는 사람들이 콘텐츠 모더레이터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하는 일은 수많은 동영상이 올라 올 때 그걸 검열하는 것입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자기를 막 자해하는 그런 유해한 동영상을 삭제하는 것이죠.

늘 이런 영상을 봐야 하니까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그로인한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매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페이스북의 한 모더레이터의 경우 지구가 평평하다는 콘텐츠를 쉬지 않고 올리는 영상을 검열하다 나중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게 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을 뺀 세상 문화들은 재밌고,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있고, 뇌가 잘 기억합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세상 문화는 악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중립이지만 그것이 거룩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이 거룩하기 위해서는 내가 선호하던 취미와 세상적인 문화들을 조절하는 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성도들이 거룩해 질 수 있는지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정확히 짚어주시죠.

우리의 외적인 거룩과 성화는 오직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사는 꾸준한 연습에서 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살겠다는 당찬 각오가 요즘 성도들에게 있을까요?

또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으로 거룩해 집니다.

성령께서 거룩한 빛을 비추시면 뭐가 잘못되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심지어 내가 착하게 행동하는 그 속에 감추인 의도가 뭔지도 거룩한 빛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죠.

그래서 나쁜 행실만 고쳐지는 게 아니라 의도가 나쁜 좋은 행실도 고쳐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겉치레 착한 행위로 남도 속이고 자기도 속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기만당해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속는 거예요.

그렇기에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절대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이런 거룩은 갑자기 은혜를 받는다고 만들어 지는 게 아닙니다.

애벌레가 느리지만 꾸준히 기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선한 행실을 계속 훈련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된 거룩한 행실은 제2의 본성이 됩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죄성이 신앙의 발목을 잡았지만 제2의 본성은 하나님께 즉각 순종할 수 있는 조련된 성품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같은 죄인이 성화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 훈련 된 거룩한 행실은 세속적이고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이기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됩니다.

청년 다윗이 어떻게 거인 장수 골리앗을 보고 싸워 볼 마음으로 달려들었겠습니까?
그것은 다윗이 매일 연습했던 물맷돌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자들을 물리치고 양을 지키기 위해 매일 물맷돌 던지는 훈련을 했잖아요?

포효하는 골리앗을 보니 딱 급소가 보이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다윗은 얼마나 기도훈련을 했습니까?

이 순간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실 것이 믿어질 정도로 훈련된 것이죠.

거룩한 행실도 그렇게 철저히 훈련되어야 합니다.

인간 골리앗을 이기는 데도 그런 훈련이 필요했다면 보이지 않는 사탄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상대할 수 있는 거룩은 얼마나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도들의 파워는 거룩에서 옵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강하지, 사람의 본질이 강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미움이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랑이 이기고, 거짓이 이기는 게 아니라 정직이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성도들의 거룩 밖에 없습니다.

거룩은 겉으로 보기에 남다른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닙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말씀대로 살아내는 능력입니다.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너그럽고 관대하게 남을 대하는 것이죠.

꾸준한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매일 행실을 거룩하게 하며 천국의 유업을 향해 한걸음씩 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들에게 거룩한 행실은 거룩한 성령으로 거듭난 것만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화평과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이 우리의 제2의 본성이 된다면 이 본성은 우리를 도와주고 믿음의 삶은 순풍을 만난 듯 앞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삶의 어떤 경우에도 침착하게 이 믿음으로 이겨내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거룩을 향해 비록 느려도 꾸준히 나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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